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한계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8년 만에 내놓은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시되어왔던 능력주의에 어떤 문제점과 한계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이 책의 저자는 한국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27세의 나이에 하버드대의 교수가 되었고 불과 29세에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1980년부터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저술활동도 많이 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등이 그것이다.
그가 저술한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그의 주요 관심사는 정의, 도덕, 공정 등이다. 마이클 샌델이 이번에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공정'이다.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책 속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승자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내 능력으로 얻어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보상이다'라며 우쭐해진다. 반면 실패자는 '누구 탓을 할까? 다 내가 못난 탓인데'라고 여긴다. 소득 격차를 넘어 정신적 격차까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운'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다. 특벼한 능력을 갖춘 채 태어난 행운, 우연히 복권에 당첨된 행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불운, 불의의 사고로 장애가 생긴 불운... 각자의 불운과 행운을 '공정한' 기준으로 측정해 보완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분노는 단순히 '내가 저들보다 못 벌어서'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의 존엄성 하락'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예전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 그 굴욕감이야말로 삶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원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면서도 학력 차이에 따른 소득격차나 사회적 차별은 어느 정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대학 간판이 정말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100%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있는 능력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능력이 곧 정의의 척도가 될 수 있는지와 개인의 능력은 정말 공정하게 측정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통하여 우리가 놓치고 있던 능력주의의 치명적인 결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소수의 뛰어난 엘리트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이끄는 국가라고 한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는 엘리트 중심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슈퍼 히어로물이 유행하는 것처럼 미국의 사회와 경제에서도 분야별로 슈퍼 스타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엘리트 중심으로 짜인 사회구조와 분위기는 옳지 않다. 능력 중심의 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사회적 지위와 부가 왜 공정한 것이 아닐까? 거기에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부와 힘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며 패자는 단순히 경기에서 패한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과 부조리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진 것은 재능일까 행운일까? 노력의 결과 성공한 사람들은 행운과 같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오로지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덕이라고 생각하는 능력주의적 신념이 강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현재와 같은 잘못된 능력주의의 해결책으로 마이클 샌델은 '겸손'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걸 운과 노력에 따라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겸손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에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공정하다고 착각하는 능력의 결과로 생긴 엘리트, 엄청난 부를 획득한 사람에게 겸손하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은 안된다는 말이 왜 그렇게 피부에 와 닿았는지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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